글제를 보면서 ‘어이구, 또 잔소리’ 하면서, 외면할 독자가 분명 있을 것 같다. 이를 감수하고라도 한마디해야겠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어려서부터 ‘인사하라’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인사는 귀찮은 예절로 여겨지고 의무감처럼 실행하려 들지 않는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인사가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명심해야겠다.

“부끄럼을 유난히 타던 소년이 소심함에서 벗어나려고 결심하곤 만나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본인도 자라면서 자신감이 생겨났으며 드디어 훌륭한 달변가가 됐다”. 그가 유명한 시인 버나드 쇼다.

‘밝은 사회는 인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다. 인사란 마음의 문을 여는 행위다.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인사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인들은 포옹하면서까지 서로에게 힘을 실어준다. 모르는 사람에게 밝게 인사하는 그들을 보면 하루의 시작부터 즐거워진다. 반면 동양인들은 앞에 다가오는 미국인에게는 먼저 인사하다가도 그 뒤에 오는 동양인과는 그냥 스쳐지나간다. 더구나 한국인인줄 알면서도 어느 때는 그가 누구인지, 연배인줄 알면서도 인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서도 인사는 늘 이슈가 된다. 젊은 신도들이 나이든 신도들에게 인사 할 줄 모른다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사찰은 ‘자비 베풀기를’ 근본으로 하는 곳이며 교회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다.

인사는 어려서부터 버릇을 길들여야 하는 습관 훈련이다. 인사 할 줄 모르면 가정교육이 안 된 사람이라고, 부모를 욕 먹이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최근 좋은 엄마 되기 위한 일종의 교과서격인 ‘우리아이 꼭 시리즈’ 중에 ‘5세의 아이에게 꼭 해줘야 할 60가지’라는 책이 있다. 그중 습관 길들이기로는 ‘차례 지키기, 고운 말 사용하기, 공공장소에서 뛰지 않기’ 등이 있는데 여기에 두드러진 것은 ‘인사 잘하기’다.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이 많다보니 어찌 보면 어른들에게 해줄 내용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사 않고 사는 근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북은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처음 인사를 나눈 날이 아마도 1972년 7월4일이다.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인사의 물꼬가 트인 것이지 않나 싶다. 그나마 지금은 또 다시 소원해지고 말았지만..

요즈음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인지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둡고, 부부사이에도 인사는 커녕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미소 지며 인사하라고 훈계 할 것인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포옹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억지로라도 인사하자. 연극이라 할 지라도 시작하자. 연극도 하다보면 현실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화장하고 몸치장 한다해도 수수한 옷차림에 살짝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다. 교양 있고 학식이 높다 해도 자기에게 인사하는 사람에게 거드름이나 피운다면 그는 존경과는 거리가 먼, 숫제 인간답지 못한 사람 축에 들고 만다.

직장이나 단체에서 처음에는 예쁜 여자, 멋있는 남자가 돋보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잘 웃고 인사 잘하는 사람이 점점 돋보이게 된다. 인사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성의만 보이면 누구나 행할 수 있으며 상대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는 기본 행위다. 일거 양득이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재상(논설위원 jsrh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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